'2008/01'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8/01/29 행복의 추구
  2. 2008/01/24 감사하라!
  3. 2008/01/21 기도하라!
  4. 2008/01/15 기뻐하라!
  5. 2008/01/11 하나님의 뜻
  6. 2008/01/09 미지의 구름 (2)
  7. 2008/01/07 죽은 행실을 회개함
  8. 2008/01/04 외적 경건과 내적 경건
  9. 2008/01/03 마음의 눈
  10. 2008/01/02 [기도편지] 열매 맺는 삶

행복의 추구

분류없음 2008/01/29 12:21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뜻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6)


하나님은 지상에서 하나님 대신 만물을 다스릴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이지요. 따라서 모든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타락한 후, 인간은 하나님의 종의 자리에 있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자신의 뜻을 따라 살기 원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부터 인간의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실천하는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할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을 때, 인간에게 돌아온 것은 공허와 좌절 뿐이었습니다.

세상은 "행복"을 미끼로 인간을 유혹합니다. "네가 이렇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세상이 말하는 대로 돈이 많고, 유명하고, 권력이 많은 사람은 매일매일이 즐겁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돈도 많고 사랑도 많이 받는 연예인들은 결국 불행에 찌든 모습을 드러내 팬들을 실망시킬까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의미입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살기 힘들어질수록 인간은 더욱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는 많은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공감대가 점차 커집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행복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 때 (마 6:33),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때 (마 6:10), 우리의 삶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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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라!

분류없음 2008/01/24 14:14
저는 사람들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에 나온 진리를 나누기 좋아합니다. 특히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통해 진리를 전달하기 좋아하죠. 하지만 제가 강의할 기회는 극히 적습니다. 특히 강사가 부족한 외국 보다, 강사가 넘처나는 한국내에서는 더 적은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이 답답하기도 했고, 왜 나는 강사로 인정받지 못할까를 고민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강의를 할 기회가 적었던 것은 나름대로 내게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길을 찾았고, 그 결과가 블로그 운영이었습니다. 작년 10월말에 세상을 바꾸는 블로그를 공개했는데, 2개월의 활동만으로 올블로그 탑 100 블로그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블로거뉴스의 베스트 블로그 기자에 뽑히기도 했죠. 앞으로도 블로그 운영을 열심히 한다면 강의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본다면 저는 옛날 부터 새로운 형식의 사역을 하기 원하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에서 썼듯, 시대가 변하면 사역의 형식도 변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죠. 그런데 강의는 새로운 형식은 아닙니다. 제가 만약 강사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면, 옛 형식에 안주하고 말았겠죠. 그러고 본다면 강사로 인정되지 않은 것은 정말 "blessing in disguise" (변장한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삶의 많은 어려움은 사실 우리를 돕는 귀중한 보배와 같습니다. 우리는 먼 미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눈앞의 어려움을 보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멀게 볼 때, 우리의 삶은 감사할 조건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야 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5:18).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할 때, 우리는 어려움의 의미를 발견하고 더욱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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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라!

분류없음 2008/01/21 23:43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흙이라는 요소와 생기라는 요소를 갖춘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은 영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에 동시에 속하지요.

인간은 삶의 대부분을 물질 세계에서 삽니다. 하지만 인간이 기도할 때, 그는 영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가 하는 기도는 영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물질 세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인간은 기도를 통해 영의 세계와 물질 세계를 연결합니다.

인간의 기도는 이처럼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반복해서 가르칩니다 (마 6:5-13, 마 24:20, 눅 22:40, 고전 14:13, 엡 6:18, 살전 5:17, 살후 3:1, 딤전 2:8, 약 5:13-16).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은 "늘 기도하라"고도 명령한다는 점입니다 (엡 6:18, 살전 5:17).

우리는 보통 하루에 한 번 기도하기도 힘들다고 느끼는데, 성경은 "늘 기도하라"고 가르치니, 우리의 삶과 성경의 가르침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 듯 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니, 어떻게든 우리의 삶에 적용할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늘 기도하지는 못한다 할찌라도 늘 기도의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즉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집중하고,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민감하다면, 그 자체가 우리에게 기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정신으로 가득하기에, 그러한 세상 속에서 기도의 태도를 취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조금씩이라도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개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며, 1분이든 2분이든, 시간 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기도의 태도가 아니라, 다른 일을 멈추고 기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도 영적인 저항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늘 기도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루에 정해놓은 시간에 정해놓은 장소에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도 "쉬지말고 기도함"의 한 실천이겠죠.

중요한 것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놓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쉽게 느끼지만,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신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환경에서는 단 한마디도 입을 열어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어디서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임재안에 거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참으로 "쉬지말고 기도"한 사람들이지요. 우리도 매일, 매 순간 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힘쓰면 좋겠습니다.


tags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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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라!

분류없음 2008/01/15 13:52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 그는 로마에 있는 감옥에 같힌 상태였습니다. 인권의 개념이 없는 당시의 감옥은 죄수들의 복지를 전혀 돌보지 않았고, 따라서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갖힌 것은 그가 복음을 열심히 전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가 나서 복음을 위해 핍박받는 바울을 도와야 마땅했죠. 특히 바울이 목숨을 걸고 개척한 수많은 교회는 바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려움에 처한 그를 돕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감옥에 갇힌 바울을 돕는 교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빌 4:15). 그나마 빌립보 교회가 그를 도왔지만, 그들도 한동안 후원을 멈추었고, 빌립보서를 쓰기 직전에야 후원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바울은 춥고 배고픈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아, 사람들은 나를 잊었구나. 내가 힘들여 섬기던 교회들은 나를 버렸구나. 이제 나는 먹을 것도 없이, 감옥에서 굶주린채 죽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하였으리라고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빌립보서를 보면 그의 태도는 이러한 암울한 태도가 아니고, 기쁨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가르쳤습니다 (빌 4:6). 이는 바울 자신이 감옥에서 배운 태도였죠. 그는 도움을 얻을 곳 없는 감옥 속에서 자신의 필요를 감사하는 태도로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아무것도 없지만 감사할 수 있었고, 빌립보 교회가 헌금을 보냈을 때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던 것입니다 (빌 4:12).

그는 빌립보 교회에게 "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빌 2:18, 3:1, 4:4). 바울은 기쁨의 중요성을 배웠기에, 가장 우울한 상황에서도 기뻐하였을 뿐 아니라, 기쁨을 가르치는 자가 된 것이지요.

성경에서 기쁨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기쁨)" 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롬 14:17). 그는 또한 성령의 열매를 언급하면서, 사랑 다음으로 기쁨을 들었습니다 (갈 5:22). 예수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5:21). 그분은 또한 우리에게 기쁨을 주어 우리 기쁨이 충만케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5:11). 베드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벧전 1:8).

기쁨은 우울의 반대입니다. 우울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에 비해 기쁨은 일이 잘 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보면 슬픈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모든 일이 다 잘되고 있지는 않겠죠. 하지만 크게 본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지금 슬픈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웃을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울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마지막에 웃는 분이고, 따라서 그분은 많은 슬퍼할 이유가 있음에도 기뻐하십니다. 그분이 기뻐하신다면, 우리도 기쁨의 감정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 18).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상 기뻐하도로록 노력합시다.
tags :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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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분류없음 2008/01/11 17:10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차 있죠.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뜻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우리 상황에 맞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모를 뿐이죠.

성경이 우리를 위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 않고,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을 많이 말하는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즉, 우리는 "내가 처한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찌 아는 것이 중요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네 삶의 일반적인 태도가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3)

이 외에도 성경에 나온 "~하라"는 명령은 (서로 사랑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등) 모두 하나님의 뜻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따르도록 노력해야 하는, 삶의 기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의 축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천국에 들어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 12:50)- 예수의 가족이 됨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 10:36)- 하나님의 약속을 받음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7)- 영원히 거함

시편기자는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고 고백했습니다 (시 40:8). 우리도 주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할 때, 하나님은 성경이 약속한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또한 우리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을 위한 하나님의 뜻도 알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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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구름

분류없음 2008/01/09 13:58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고,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계명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매우 여러운 일로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찌를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찌 명백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답안인 주기도문을 가르치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7-19절 등에서 자신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보였으니 그의 기도를 따라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 (딤전 2:2)을 위해 기도하면 되겠죠.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현대인이 바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없어 TV를 전혀 안보거나, 신문을 안 읽거나, 인터넷 서핑을 안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스킨 바르는 제 자신을 보고, "내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구나" 하고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기도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마음 깊숙한 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따라서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진다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기도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보다는 침묵만을 느낍니다. 기도를 해도 아무도 들어주는 존재가 없는 것 같고, 그냥 나 혼자의 노력인 듯 보일 때가 많은 것이지요.

중세 영국의 어느 수도승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미지의 구름 (The Cloud of Unknowing)이 막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미지의 구름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해선 이러한 미지의 구름을 뚫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미지의 구름을 뚫고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바로 기도를 조금하고 말 것이 아니라 미지의 구름이 뚫릴 때 까지 하면 됩니다. 물론 영성이 깊은 사람은 기도를 시작하면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찌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5분, 10분, 30분을 해야 겨우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질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가 또 하나의 율법이 되면 안되겠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도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결코 놓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기도가 어렵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기도 안에서 성장하도록 더욱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미지의 구름을 뚫을 때 까지 기도하도록 힘씁시다.
tags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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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행실을 회개함

분류없음 2008/01/07 11:12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 우리는 예수님의 뜻 안에 거할 때 생명을 얻고, 우리의 행동에도 생명이 넘칩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씀하지 않은 방법, 인간적인 방법을 취할 때, 우리의 행동은 생명이 없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꾸짖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율법을 따름으로 구원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는 육체를 따른 행동이었고, 따라서 생명이 없었지요.

성경은 이러한 행동을 "죽은 행실"이라고 부릅니다 (히 6:1, 9:14). 히브리서 기자는 기독교 신앙의 첫번째 기초로 "죽은 행실을 회개함"을 듭니다 (히 6:1).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면, 가장 먼저 죽은 행실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지요. 죽은 행실은 단지 눈에 뚜렷이 드러나는 죄악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으로 이루려는 노력도 죽은 행실이지요. 아브라함도 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 (창 15:4)을 받고, 자식이 생기기만을 기다렸는데, 그의 아내 사라는 나이가 너무 많아 임신이 불가능했지요 (창 16:1). 보다 못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내 몸종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낳으라"고 제안합니다 (창 16:2). 그는 아내의 말대로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낳지만, 이는 불행한 결과를 낳습니다. 처음에 하갈과 동침하라고 제안했던 사라는 하갈이 잉태한 후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아브라함을 괴롭히고 (창 16:5), 나중에 이삭이 태어난 후에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힌다는 이유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도록 요구합니다 (창 21:10). 결국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야 했고, 이스마엘의 자손 아랍족과 이삭의 자손 이스라엘은 지금도 서로를 원수로 생각하고 싸웁니다. 이러한 불행은 아브라함이 생명이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즉, 죽은 행실이 그의 삶에 오점을 남긴 것이지요.

저도 최근 몇 년간 추진 하던 일이 결국은 죽은 행실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포기하였습니다. 그 일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내가 인간적 생각과 욕심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도우심 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더 이상 내 힘으로 이 일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은 생명이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한 행동은 결과를 낳기 전에 멈추는 것이 최선입니다. 결과를 낳고 나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지기 때문에 감당하기 힘들기 마련이지요. 그나마 지금 멈출 수 있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벧후 1:3).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분의 생명과 능력에 따른 행동만을 하며 살기 원합니다.
tags :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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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경건과 내적 경건

분류없음 2008/01/04 17:22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면 변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만나 변한 예죠.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은 교회를 위해 핍박 받는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흥분 잘하던 시몬은 교회의 기둥 베드로로 바뀌었습니다. 활화산 같은 성격의 우뢰의 아들은 사랑의 사도 요한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정상이고, 우리도 그렇게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적인 변화보다는 외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 교제함으로 내면이 바뀌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사람들이 보는 말, 행동, 옷차림 등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지요. 특히 예수님 당시에는 이처럼 종교 행위를 겉으로 드러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경건한지 보이기 위해 회당이나 거리에 서서 기도하였고, 가난한 자를 도울 때는 큰 소리로 자신의 행위를 알렸습니다 (마 6:1-5).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외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경건한지 알리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경건한 사람은 특정한 옷을 입어야 하고, 특정한 말투를 써야 하고, 특정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그러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겉모습은 진정으로 그 사람의 경건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바울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고 논쟁을 벌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롬 14:17). 바울이 아는 하나님 나라는 음식이 아니라 내면의 문제였던 것이죠. 우리도 진정한 경건을 추구한다면,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 없는 경건의 모양은 위선일 뿐이지요.

예수님이 가르치신 경건의 핵심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함"입니다 (마 6:6).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야 말로 경건한 모습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러한 경건을 인정하지 않을찌도 모르죠. 하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서 점차 시간을 들일 수록 그의 마음이 변하고, 그의 태도가 변하고, 결국 그의 얼굴도 변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를 보았듯 (출 34:29), 사람들은 골방에서 기도를 한 사람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올 한해는 경건에 힘쓰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내 삶을 통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tags : 경건, 기도,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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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

분류없음 2008/01/03 14:54
I.
아람왕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장수들을 모아 놓고, "여기에서 적을 매복하자"고 결정하고 나면, 적은 꼭 그곳을 피해 다녔기 때문이었죠. 그는 "우리 중에 누군가 첩자가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그의 신하들은 "첩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가 우리의 회의 내용을 알아차리는 능력 있는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여 이기려면 엘리사를 먼저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군대를 이끌고 엘리사가 있던 도단성을 둘러쌉니다.

엘리사의 종은 아침에 일어보니 성 주변에 가득한 대군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이들이 분명히 엘리사를 죽이려 왔고, 따라서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는 말합니다, "아아, 주인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엘리사는 답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와 함께한 군대가 저들보다 더 많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종의 눈을 뜨게 하시도록 기도합니다. 그가 기도를 마쳤을 때, 종은 눈이 열리며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병거를 봅니다. 엘리사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단지 종의 눈이 밝지 못해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 뿐입니다 (왕하 6:8-17).

II.
야곱은 하란으로 가던 중 해가 지자 돌을 베개 삼아 베고 누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얼마전 어머니의 지시대로 아버지를 속여 형의 축복을 받았고, 형은 그 일로 분이 풀리지 않아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너는 형처럼 이 지역 여자들이랑 결혼하지 말고 멀리 있는 우리 일족의 여자와 결혼해 오거라"하고 명령하였기에 먼 길에 나섰습니다. 그는 가진 것도 없었고, 가족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습니다. 오직 불확실한 미래만이 그 앞에 놓여 있었죠.

그는 꿈을 꿉니다. 눈 앞에는 사다리가 보이고, 사다리 위로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이 그의 귀에 들립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그는 깜작 놀라 꿈에서 깹니다. 그는 말합니다. "아, 여기는 하나님이 계시는 땅인데, 내가 몰랐구나." 그는 자신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창 28:1-22)

III.
글로바는 친구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며칠 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다는 여자들의 말이 사실일찌에 대해 친구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새 옆에 한 사람이 나타나더니 말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그는 이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의 죽으심에 대해, 그리고 그분을 봤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대해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면 죽었다 부활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소? 이는 이미 율법에 예연한 바입니다" 하고 설명해 줍니다. 그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예수의 죽음이 단지 우연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글로바와 그의 친구는 이 사람을 붙잡고, "우리와 함께 머물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오" 하고 간청을 합니다.

결국 이들은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떡을 떼는 손에 난 못자국을 보고, 글로바와 그의 친구는 깨닫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설명해준 이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 그분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눅 24:13-35)

IV.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어둡고 힘들다고 느끼지만, 문제는 인생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닫힌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옆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우리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을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8-19)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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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편지] 열매 맺는 삶

분류없음 2008/01/02 13:32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모두 평안하시지요.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인사도 드릴겸 기도편지를 씁니다.

2007년은 원래 바쁘고 사역이 많은 해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봄에는 호주에서, 가을에는 독일에서 세계관학교 간사로 섬길 예정이었고, 여름에는 브라질 Pan Americano 체육대회 전도여행이 잡혀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학생수 부족으로 호주와 독일 일정이 취소되면서 브라질만 다녀오게 되었고,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로렌 커닝햄의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 번역을 마무리했고, 여러 곳에서 통역으로 섬기긴 했지만, 크게 봐서는 시간의 여유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몇년째 씨름하던 선교에 대한 책도 마무리할 수 있었고, 세계관에 대한 책도 많이 쓸 수 있었죠.

책을 쓰는 사역은 평소에 늘 생각만 했었는데, 이제 실체가 드러날 정도로 진전이 되어서 기쁩니다. 아마 첫 번째 책은 올해 여름쯤 나오리라고 예상합니다.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을 만나기 위해 시사 블로그 세상을 바꾸는 블로그를 운영하였고, 그리스도인을 위한 블로그인 열매 맺는 삶도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열매 맺는 삶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객은 적지만, 앞으로 매일 짧은 글을 통해 받은 은혜를 나누는 장소로 키우고 싶습니다.

작년에 가장 많이 생각한 주제는 열매 맺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주신 명령은 "열매 맺으라!" (Be fruitful) 였습니다. 하나님은 같은 명령을 아브라함을 비롯한 자신의 백성에게도 반복하시지요. 예수님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6).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열매인 것이지요.

열매는 식물의 자기복제입니다. 그 식물의 핵심은 열매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사과나무나 배나무나 줄기에서 가지가 나고, 가지에서 잎사귀 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고, 배나무는 배를 맺는데서 정체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도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는 열매를 맺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나무일 뿐 아니라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요 15:1)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을 우리의 특성에 맞게 소화해 열매로 맺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열매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결론은 내가 쓰는 글이 내 열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책을 쓰거나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점에서 처음 시작한 시사 블로그가 두 달 사이에 24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글을 통한 열매 맺기는 계속 힘쓸 생각입니다. 성경은 사역의 열매, 성품의 열매, 입술의 열매, 몸의 열매 등 많은 열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이러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드리도록 노력하게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올 한해 많은 열매를 거두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얼굴을 못본 분들에게 특별한 그리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김성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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